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로 회담 (문단 편집) === 회담 예비 의안의 작성 === 각국의 이익 확보에 관여된 문제이니만큼 각각의 입장이 대변된 여러 예비 초안이 작성되었다. 먼저 미국은 카이로로 가는 전함 [[아이오와]]에서 11월 12일부터 11월 20일까지 회담 준비에 착수하여 유럽전선과 대일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11월 15일과 19일 양차에 걸쳐 실시된 합동참모회의에서 중영소 3국과 협의할 의제가 정해졌고 11월 15일의 회의에서는 처칠과 회담하기에 앞서 장제스와의 단독 회담이 열리기로 결정되었다. 11월 19일의 회의에서는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의 의제가 협상국별로 나뉘어 토론되었는데 대중국 의제로 소련의 대일전 참여에 대한 태도, 북버마 작전에 대한 중국 지원의 중요성, 전후 중국의 일본 점령에 대한 참여 문제, 군사 및 해군기지의 상호원조에 관한 사항이 있었으며 영국 의제로는 동지중해, 발칸 전선 참여여부, 소련 의제로는 미군의 소련기지 사용을 포함한 전략폭격 협력이 논의되었는데 중국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 역시 큰 기대감을 품고 상세한 예비의안을 작성했다. 중국은 1943년 11월 14일 본격적으로 회담에 착수, 군사위원회, 국방최고위원회, 스틸웰 휘하의 중국군구가 각각 의안을 작성했다. 국방최고위원회와 군사위원회는 전후처리 문제를 다루었고 스틸웰이 대일작전문제를 다루었다. 군사위원회는 대일반정전략 설비 및 극동의 여러 문제에 관한 토론, 일본이 무조건 항복할 때 접수해야 하는 조항, 전후의 중요문제를 다루었다. 이중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관련하여 군사, 정치, 경제, 기타 방면의 문제가 논의되었고 전후 중요문제로는 세계평화유지 문제가 포함되었는데 일본의 무조건 항복 조건으로 바로 중국의 영토 반환과 '''한국의 독립이 포함되었다.''' 국방최고위원회는 전시군사합작, 전시정치합작, 전후중미경제합작을 요구했다. 이후 전시정치합작에서 역시 한국과 인도의 독립보장과 전후 연합국의 협력 유지가 언급되었다. 다만 중국 영토 반환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스틸웰은 카이로 회담에 앞서 <향후 회담에 관한 군사방면의 건의안>을 장제스에게 제출했는데 이는 중국군을 90개 사단을 축소하여 정예화시키자는 주장이었다. 스틸웰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자신만만했지만 중국의 사정상 불가능했고 이미 독일 고문들에게 비슷한 제의를 받아 실시해보고자 했던 장제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어쨌거나 중국의 관심은 오로지 대일작전에 관한 것이었다. 중국의 제반 문제들은 다음과 같았다. ||갑: 전략방면 제안 1. 버마 반격에 있어서의 해, 육군 동시 출동의 총 계획. 2. 중미영 3국 연합참모회의의 설립. 을: 정치방면 제안 1. 동북, 대만, 팽호의 중국으로의 반환. 2. 한국의 전후 독립 보증. 3. 태국 독립의 보증과 인도네시아 반도 각국 및 화교의 지위. 병: 전후에 있어서의 유력한 국제기구의 설립을 준비한다. 정: 일본의 투항 및 처리에 관한 계획안. 무: 중미 경제합작 제의. 기: 미국에 대한 대여물자에 관한 제안.|| 추가로 홍콩, 구룡, 티벳 등 영중 영토문제의 현안을 거론하는 것을 회피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영국은 11월 10일과 11월 18일 두차례에 걸쳐 참모회의를 개최했는데 소위 오버로드 작전이라 불리는 유럽대륙의 상륙작전 수행 문제가 그 핵심이었다. 중국이 대일작전에 관심을 기울였듯이 영국도 유럽작전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후일 영국은 미국, 중국과의 마찰을 빚게 되었다.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장제스의 참석으로 우리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났다. 슬프게도 영국과 미국 참모들의 대화가, 길고 복잡할 뿐 중요하지도 않은 중국 이야기 때문에 산만해져 버렸다. 더구나, 나중에 알게 되듯이 인도-중국 지역에 대해 과장된 견해를 취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곧 장제스 총통과의 지루한 대화에 갇혀 버렸다. 우리가 테헤란에서 돌아올 때까지 ''''장제스와 그의 아내를 설득하여 그들이 피라미드 관광이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려는''' 모든 희망이 무너져 내렸다. 그 결과 카이로에서는 중국 문제가 가장 말단이 아니라 '''가장 우선적인 지위'''를 차지해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